『부활』생명의 성령의 법 로마서8장1-11절 (박영선 목사) 다시보는 로마서
『부활』
“생명의 성령의 법”
로마서 8:1-11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며 동시에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역사입 니다. 이것은 종종 우리가 죄 중에 거하고 사망으로 운명 지어졌던 인생이 예수를 믿음으로 이 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고 천국에 가는 것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그러나 더 크게, 예수의 부활이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천국의 삶도 역사 속에서 시작합 니다. 그게 모든 신자들의 구원, 믿음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보이는 환경과 조건이 영원한 나라가 되는 것은 보류되어 있지만, 한 생명이 한 인간이 그의 생 애를 부활생명으로 사는 것은 구원이 의도하는 바고, 구원이 주어졌을 때부터 예수께서 십자가 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시작된 역사적 현실입니다.
로마서 8장1-2절의 오늘 본문에 있는 중요성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 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우리를 결국 망하는 데로 몰고 갑니다. 하나님 없이 이 세상을 사는 이 세상의 인생이 가는 자리죠. 그러나 이 8장에 이르도록 앞의 3장에서부터 7장 내내 한 그 성경의 증언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한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과법칙이 아니며 논리가 아니며, 약속을 하신 이가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하여 한 기적 이라, 믿음의 방법이라, 믿음이란 뭐냐? ‘우리가 이해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을 해결한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게 믿음입니다.
그런 일이 가능하냐?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 모두의 죄를 지고 죽으사 죄 라는 것을 죄인된 존재를 없애셨다.
예수의 부활로, 부활생명 아래 새로운 인류가 태어났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부활은 과거가 없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가 없어지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거의 도덕적으로 이해해서, ‘지난 죄는 씻어졌고 이제는 잘 살아야 된다.’ 이 말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다시는 죄를 지으 면 안된다.’ 가 됐던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중요한 이해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라는 것이 갖는 의미 가 “하나님 없는 존재를 없애시고 하나님이 품으시고 하나님의 자녀인 인생들을 새로 만드셨 다”로 이해해야 옳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전 인류를 예수께서 대신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로 이제 사망이 최종 운명이 아니고, 부활이 최종 운명인 새시대, 새 인생을 만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셨고, 그것은 모든 믿는 자가 예수를 믿는 즉시 시작되는 새 로운 세계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14-17절은 이렇게 증언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 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 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 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 도다”
예전 인생, 죄가 권력이고 사망이 운명인 그런 나라는 없어졌습니다. 예수 안에서, 이제는 성령 께서 권세고 그 운명은 승리가 되는, 생명과 사망의 법에서 성령과 승리의 생명의 법으로 옮겨 집니다. 그것이 중첩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직도 구원의 기회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러니 이것은 예수님 다시 오시 날, 세상이 환경과 조건이 변하여서 분명해지겠지만, 한 인생이 살고, 한 인격이 그의 인생에 모든 결정과 순종과 또는 판단과 실천에 있어서 지금 허락되어 있 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자의 삶은,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보는 바대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는 말의 깊은 의미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법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족으로 취급됩니다. 자식을 법으로 다스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혈육이고 그것은 가족 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긴다.”는 이 말은 예 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것은 잘잘못을 살릴 것이냐, 죽일 것이냐? 버릴 것이냐, 받아 들일 것이냐가 아닙니다. 이 관계는 무엇보다 커서,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나중에 로마서 8장, 여러분 잘 아시는 35절 이하에 가면 나오죠.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 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은, 사랑이 무슨 특별한 다른 것과 다 다른 어떤 관계성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그것은 법으로 따질 수 없는, 법으로 흠을 낼 수 없고, 흠으로 영향을 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다 는 걸 말하죠. 그러니 그 뒤에 나오는 3절 이하의 육신으로 사는 삶, 영으로 사는 생활은 다 육신 으로 산다는 것은 죄가 권세이고 사망이 운명인 세상에서, 영으로 사는 자, 성령이 권세이고 생 명 영생이 운명인 자리에 들어온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주 오해되어서, 진심을 다하여 신앙인으로 성령에게 자기를 순종하는 자와 그렇지 않 은 자로 나누면, 아무도 배겨나지 못합니다.
이 8장3-5절에 오도록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 6장인데, 6장이 한 얘기는 전부 이겁니다. 6장 에 가보실까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 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 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었다, 예수께서 죽으실 때,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시는, 죄인들이 죽 어야하는 것을 그가 죽으시는, 그래서 우리가 죽은, 예수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인 것같이, 그래 서 예수의 살으심은, 우리의 죽음을 죽은 예수의 살으심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자리에서 우리를 새 생명으로 일으킨 부활의 현장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연합한 자가 된 것같이, 그의 살으심과 연합한 자가 되어있다. 구원을 받 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있다. 이게 성경이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선택권을 가지고 있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의 영향 아래 있을지라도, 그러나 여러분은 성령과 연합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잘못을 잘못으로 끝나게, 그 잘못이 만드는 재난과 죽음으로까지 가지 못하게 여러분 과 묶인 예수와 성령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가치, 부활절을 우리가 감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더 이상 나 혼자 책임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 선택권은 그대로 있지만, 우리의 못 난 것은 그대로 있지만, 마치 초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렇게 설명한 것같이, 사망 이 그를 묶어둘 수 없었다. 사망이 생명을 묶어둘 수 없었다. 생명을 묻어놓을 수가 없었다. 똑 같습니다. 우리 안에 죽이는 것이 있고, 우리 안에 망하는 것이 아직 남아있을지라도, 우리 안에 들어오신 부활하신 예수를, 부활생명의 하나님을 우리가 묶어둘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그로 말미암는 구원에서, 그와의 연합에서 우리의 운 명은 기필코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못났든지 간에 말입니다. 그러니 성경이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를 여러분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가시면, 지금 한 이 말을 고전 15장55-58절에서는 이렇게 요약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 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 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가 승리하지 않습니다.
승리를 노력 하는 것은 잘하는 짓입니다. 명예로운 것이고 현명한 것이고, 성실한 것이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가 주어진다는 것은 그 승리가 실패될 수 없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놀라운 부분은 우리가 하나님께 하는 일보다 하나님이 하는 일이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그 성 실하심으로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가 잘할 때는 물론 기뻐하시며, 우리가 배반했을 때도 놓아두 지 않으시며, 우리가 망했을 때도 되돌려 살려놓을 실 것입니다.
그게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생명”입니다.
이 말을 듣고 ‘이제부터는 살판났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못난 사람이다 그런 뜻입니다. 괜 찮습니다. 철이 들면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정상적으로 얘기하자면 담력을 가지셔야 됩니다. 어떤 담력? 여러분들이 밤낮 조마조마 하거나, 언제나 항상 완벽해야 되거나,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 이상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루씩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그 때의 최선을 묵묵히 꾸준히 인내하며 세상에 확 인 없이 해나가는 것이 최고의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기에서 시험을 받는 지 모릅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열심을 가지면 온 세상이 나를 조명하고 편을 들어야 된다고 생 각하고, 내가 주를 위하여 큰 뜻을 갖고 있으면 모든 권력이 주어져 내가 모든 세상의 문제를 해 결해야 된다고, 그렇게 안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남는 게 없습니다.
여러분이 구국의 영웅이 되고, 여러분이 천재가 되면 남는 건 동상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변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런 방법으로 여러분을 가르치지도, 인도하지도, 목적하지도, 그런 걸 하라고 부추기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이 변해야 되는 겁니다.
이걸 하라고 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17-20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 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
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세상이 하는 일은 부패하고 더럽고 부도덕하고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다 그냥 썩어가는 겁니다. 소모될 뿐입니다. 낡아질 뿐입니다. 거기엔 생명이 없습니다. 결국 이것 외에 선택의 여 지가 없습니다. 헛됩니다.
여러분 나이 들면 너무나 분명하게 확인하는 인생의 경험들입니다.
거기엔 아무것도 가치 있는 게 없습니다! 그것과 이제 다릅습니다.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 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 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막연한 표현같이 되어있지만 이겁니다.
‘멋지게 살아라! 그렇게 해 봤자 뭐냐?’
그렇지 않다. 우리는 영생을 가진 자다. 너희가 거기서 꼭 해야 되는 일을 해라! 의롭고 성실하고 정직하며 담대하며 기다리며 용서하며,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이 앞에 보이는 것같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는 이유는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끝이 사망이고 모든 것이 아무 열매 없이 헛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망하기 전에 한 번 더 기회를 가지자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린 다릅니다. 우린 무한히 뻗어나가는, 자라나가는, 충만으로 가는, 영생을 소유한 자입니다. 모두가 죽어가고 그것은 모두가 자폭하는 현장 속에서 우리는 나아가는 겁니다.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가장 모든 것을 가진 것으로 삽니다.
뭐를 갖고 있죠?
영생을 갖고 있습니다.
의를, 선을, 구원을, 회복을, 기적을, 영광을, 그게 다른 것이죠! 그게 『부활』입니다.
모두가 ‘열심히 해서 뭐해? 정직해서 뭐에다 써? 남을 위해서 손해 볼 것 없어!’ 난무하는 유혹들 아닙니까? 거기서 우리만은 정직하고 우리만은 더 사랑하고, 이렇게 가치로 비교를 하는 바람에 의지의 싸움, 홍보의 싸움같이 되었습니다. 본질적인 싸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뭐냐? 뭐가 위대한 것이냐? 생명을 가졌다는 게 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새로운 생애, 절대 사망으 로 끝나지 않고, 생명과 영광으로 끝난다는 이 길에 들어선 이상, 어느 방향으로 하루하루를 어 떻게 노력해야 되는가?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죠! 새로운 각오, 새로운 책임, 새로운 명예가 생깁니다.
이걸 모르면, 부활절에 계란 두개 까먹고 끝입니다. ^^
자신의 인생과 예수 믿는다는 고백이 가지는 영광을 모르면, 늘 불만과 억울함 속에서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헛되 보입니다. 그럴까요? 그럴까요?
갈라디아서 5장16-21절은 이렇게 이 문제를 비교하죠.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 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 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 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여기에 나오는 이 두 비교, 우리 비유를 위해서 공통된 공통분모를 이걸 쓰죠.
육체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 그러나 둘은 그렇게 비교되지 않습니다.
육체의 일, 그리고 성령의 열매입니다.
육체엔 열매가 없습니다.
육체는 아까 뭐라고 그랬죠? 하나님 없이 죽을 인생을 사는 것, 육체, 거기에는 소진 밖에 없습니 다. 파괴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는 폭력 밖에 없습니다. 만들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열매 가 없습니다. 생명이 있어야 열매가 달리는 겁니다. 그러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라고 나오는 겁니다. 생명, 영생으로 가는 길, 저기에는 물끊긴, 물 없는, 그게 극명하게 대조되고 이해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수
고가 다만 보상을 위한 요구에 불과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보상을 받지 못하면 분노하는 조건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오래 참고, 절제하고 기다려야하는 이런 모든 일들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요. 뒤가 없으면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결과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양보할 수 없습니다. 충만하고 넉넉한 것을 가지지 않고는 누구에게 무엇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무얼 나누어야 하는데요?
인간의 운명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가!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굉장한 것인가! 인생을 산다는 게 얼마나 큰 기적을 기회로 가지는 것인가를 알지 못하면, 인내, 절제, 순종, 충성, 이런 말은 얼마 나~얼마나 쓸데없는 말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시간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 다해보자, 그게 남기는 게 뭔지 아시죠? 허무, 절망, 남한테까지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이 남습니다!! 이게 다인가? 이게 다인가! 우리의 기 쁨을 이렇게 스스로의 절망을 다시 한 번 후벼 파는 것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런 깊은 도전, 영혼의 도전, 갈증 앞에서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시고, 세상이 알아주는 방법 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확인하는 바로 이 내용에서『부활!』“그러 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건져내었음이라”를 기억하시는, 자신 있는 얼굴로 사시는 여러분의 인생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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